한신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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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효고현이지만 오사카부와 효고현의 경계에 있어서 일본인들조차 오사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역사와 인기가 압도적이라 진짜 오사카부 연고 프로야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를 제치고 오사카 및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자리하고 있다.[11] 고시엔 구장이 오사카에 있다는 말을 듣고 화내면 효고 사람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대충 오사카에서 고베 가는 길에 있다고 보면 된다. 개막전과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 고시엔 구장을 빌려주는 기간에 한해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홈 경기를 열고 있다.
팀의 상징은 호랑이. 팀 컬러는 옐로우. 그리고 홈 유니폼의 버티컬 스트라이프(세로 줄무늬) 또한 특징이다. 모기업은 이 팀 덕분에 먹고 사는 한신 전기철도다.[12] 덕분에 경기 열리는 날엔 한신 전철은 엄청나게 붐빈다.
일본 프로야구 원년 구단으로서 과거부터 이미 간사이를 대표하는 초인기 팀으로 유명했고 최근에는 평균 관중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지도와 관중 몰이는 최고지만 그와 반비례해서 팀의 역대 성적은 대부분 하위권이다. 자국 두 번째 규모의 도시 광역권이 연고지인 인기 팀, 역사가 긴 원년 구단, 그에 비해 성적이 처참한 것이 바다 건너 롯데 자이언츠와 매우 유사하다.[13]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리그 우승 10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밖에 없다. 첫 우승(1985년) 후 2번째 우승(2023년)까지 무려 38년이 걸린 터라 일본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이 한신 우승보다 쉽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실제로 한신 소속 아오야기 코요, 이와자키 스구루, 우메노 류타로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오며 실현되었다.
2. 구단 명칭[편집]
영문 표기는 HANSHIN Tigers로 해태/KIA 타이거즈의 영향으로 한신 타이거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14] 구단 정식명은 어디까지나 탁점을 붙이지 않은 阪神タイガース로, 한국어로는 한신 타이거스라고 발음된다. 물론, 일본어 표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한신 타이거스로 적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한신 타이거스 측에서 원한다면 그렇게 적어주는 게 좋겠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요청이 들어온 것이 아닌 이상 딱히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프로야구 팀의 '스', '즈' 표기도 일본어로 일관성 있게 옮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15]
구단 이름에 걸맞게, WWF 일본지부와 협력하여 호랑이, 표범을 비롯한 고양이과 동물 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이자 WWF 일본지부 회장인 도쿠가와 츠네나리도 한신 팬이다. 링크
3. 구단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홈구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고시엔 구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홈구장은 효고현 니시노미야시[16] 에 위치한 한신 고시엔 구장(阪神甲子園球場)으로 고시엔역 앞에 있다. 1924년에 지어진 야구장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임과 동시에 고교야구의 성지라고 불린다.[17] 이 때문에 철저한 개보수를 하고 있어 연식에 비해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구장 내부도 구장 외부 못지않게 고급스러우며, 내부는 리모델링 공사를 거치며 최근에 지어진 구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외야 모양으로 좌우중간 118미터로 널찍한데, 역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어서 중앙은 좁다. 알다시피 홈런은 좌우로 당겨칠 때 많이 나오는 거라 좌우가 넓어 홈런은 나오기 힘든 데 비해, 중앙은 좁아서 중견수 수비는 쉬워서[18] 장타를 막기는 쉽다. 여기에 바닷가 지척이라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기 쉬운 건 보너스. 덕분에 세리그에서 나고야돔과 함께 투수친화적인 구장으로 꼽히며, 내야가 전부 흙으로 덮인 유일한 일본프로야구 구장.
제2 홈구장은 두 구장이 있는데 교세라 돔 오사카는 봄, 여름 고시엔 고교야구 시합으로 인해 홈 개막 시리즈와 8월 홈 경기 때 이용한다. 덕분에 죽음의 원정을 피할 수 있고, 고시엔보다 적은 수용 인원으로 매 경기 만원 시합으로 치른다.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의 머스캣 스타디움은 연간 1회 혹은 2회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5. 팀 컬러[편집]
홈구장인 고시엔 구장의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아 투수력과 발야구 위주의 팀 컬러가 형성되어 있다. 상술했듯 좌우중간이 넓고, 역사다리꼴로 중앙이 좁은 외야 모양으로 인해 홈런이 나오기 힘들면서 외야 수비는 쉬운 구조로 인해 장타를 억제하기 쉽게 되어 있고, 전부 흙으로 된 내야 탓에 내야 바운드가 타 구장과는 이질적이라 내야 수비가 허접한 것이 일종의 팀 컬러이다. 매년 팀 실책 수 1위는 거의 따놓은 당상일 정도.
이 구장조건에 맞게 주로 내야 안타를 잘 치는 발 빠른 선수들로 타선을 꾸리고, 강력한 투수진으로 틀어막는 스몰볼이 팀 컬러. 특히 불펜과 리드오프만큼은 대대로 남부럽지 않은 팀이었으며, 부족한 장타력은 FA 영입이나 용병으로 메꾸는 경우가 많다. 홈런왕은 86년의 랜디 바스 이래로 근 40년 가까이 배출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만성적 장타 부족에 시달리는 팀이나,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아카호시 노리히로를 비롯, 현재도 19~23시즌 5년 연속 도루왕을 배출하고 있을 정도로 뛰는 야구에는 강한 팀이며 근 10년간 세이브왕을 6회나 배출했을 정도로 특유의 컬러가 확실한 팀이다. 우연히도 영원한 라이벌인 교진과는 정반대의 팀 컬러를 지닌 것이 재미있는 부분.
그래서 확실히 점수는 잘 안 나는 편이지만, 위의 내야 수비가 허접한 점과 맞물려 1점을 지켜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도대체 어디서 어떤 예능 수비가 터져 나올지 모르는 데다 홈 시합에서는 상대 팀 역시 예능 수비를 하게 되는지라 행운의 안타 역시 자주 터지는 편이다. 1~2점차 외줄타기 같은 승부를 자주 하는데 실수도 잦아서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쫄깃한 야구를 하는 팀이라 점수가 잘 안 나도 시합 내용이 재미있어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또한 외국인 용병, 그 중에서도 타자 용병 먹튀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 팀. 먹튀의 전설 마이크 그린웰을 비롯 수많은 바스의 재래라 불렸던 먹튀 용병들이 이 팀의 역사를 수놓았다. 상술했듯 부족한 장타력을 메꾸기 위해서 외국인 용병 스카우트에 공을 들이는 구단 중 하나인데, 고시엔 구장이 미국 기준으로도 제법 빡센 투수 구장이다 보니 이 고시엔을 넘길 수 있다는 장타력 검증이 끝났다고 할 만한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 내 타 팀에서 오래 뛰며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이다 보니 경력이 꽤 쌓여 요구하는 돈은 많은데, 경력이 많은 만큼 나이는 제법 있어서 폼이 떨어져 있어 시원찮은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도 많고, 또 거포형 선수들은 대체로 컨택이 약점이다 보니 일본 리그 특유의 떨어지는 종변화구에 삼진을 붕붕 돌리는 타자들도 많아서 막상 와서는 돈만 한 활약을 못 보여주는 선수가 많았다.
또한 구단이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모기업이 이 팀 덕분에 먹고산다고 할 정도로 돈이 되는 팀이라, 투자 역시 화끈해서 교진, 소프트뱅크와 함께 FA 시장의 큰 손 중 하나. 교진처럼 이 선수 저 선수 싹 다 쓸어담는 것은 아니지만, FA 최대어가 나올 시 항상 행선지로 이름이 오르내리며 몇 년에 한 번씩은 굵직한 선수 영입을 터트리는 시장의 조용한 강자다. 특히 2010년대는 해외파 영입에 주력했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조지마 켄지, 니시오카 츠요시, 후쿠도메 코스케, 후지카와 큐지 등을 연달아 영입에 성공했고 이 선수들이 중심이 되고 오릭스에서 영입한 이토이 요시오 및 머튼, 고메스, 메신저, 오승환 등 용병들이 단체로 터져주며 외부 영입의 힘으로 2010년대에 중흥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에 처참하게 실패를 맛보고 망한 이후, 내부 육성에 다시 공을 들이면서[19] 2019~2022 야노 아키히로 체제에서 성적과 리빌딩을 모두 성공시키고, 야노 시대에 자리잡은 선수들이 후임 오카다 아키노부 시절인 2023년 우승의 주축이 되었다. 과거부터 후지카와 큐지를 비롯해 투수 육성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팀인데, 이에 반해서 타자 육성은 그닥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를 못 본다는 야수진에서도 2015년 이후부터 오오야마 유스케, 치카모토 코지, 사토 테루아키, 모리시타 쇼타 등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예전 대비 늘어났다.
일본시리즈 우승을 워낙 오랫동안 못 했었고 무엇보다도 90년대의 10년 이상 간 암흑기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형편없는 약팀인 것 같은 인식이 강하지만, 안정된 투수력을 기반으로 한 힘으로 10년이 넘는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양대 리그제 실시 이후 통산 승률 .516일 정도로 강한 팀이며 특히 포스트시즌은 최근 10년 동안 8회를 진출했을 정도의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 그러나 상술했듯 강점도 확실하지만 약점 또한 극명한 야구로 인해 2023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장점을 살려 어찌저찌 포스트시즌은 진출하지만 한 방이 부족하다는 약점 때문에 결국 우승에는 한끗 모자라는 시즌을 수십 년째 반복해왔던 팀이었다.
6. 유니폼[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인기[편집]
사실 간사이 지역에서 처음부터 한신이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TV에서 볼 수 있는 야구팀이 요미우리뿐이라 간사이에서도 요미우리 팬이 됐던 사람들이 많았고, 한신은 요미우리의 가장 오래된 라이벌로서 요미우리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정도의 팀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 초까지 고시엔에서 만원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대진은 한신-요미우리 전뿐이었고, 1973년 한신의 에이스 에나츠 유타카가 연장 끝내기 홈런으로 자신의 노히트 노런을 완성했던 경기의 관중 수도 (실 관중 집계가 아니었음에도) 9000명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간사이 지역에는 한신 외에도 퍼시픽 리그의 난카이 호크스, 한큐 브레이브스, 킨테츠 버팔로즈가 있었고, 난카이가 5~60년대, 한큐가 6~70년대에 퍼시픽 리그를 씹어먹으면서 퍼시픽 리그 팀들을 응원하는 팬들도 많았다. 1959년 난카이 호크스가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자, 오사카의 중심가인 미도스지에서 퍼레이드를 벌였을 정도.
그러다가 1969년 한신의 연고지인 효고현을 기반으로 하는 선 텔레비전이 한신 편파 야구 중계 방송을 시작했고, 편성의 구애를 받지 않는 독립방송국의 이점을 살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신의 인기가 점차 올라가던 중, 1985년 팀이 21년 만의 리그 우승과 사상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자 간사이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 타이거스 열풍이 불었고, 이를 계기로 한신은 간사이 대표 팀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다른 팀의 경기를 보는 게 쉬워졌고, 응원 팀을 옮겨가는 일이 많아져서 요미우리 팬의 숫자가 좀 줄어들었으며, 퍼시픽 리그 팀들도 연고지 이전과 구단 합병, 밉상짓 등으로 인해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리하여 간사이 지역 야구 팬들의 민심은 한신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인기는 엄청 좋은데 성적이 시원치 않다는 점에서 인기는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구단이다.
인기가 많은 만큼 극성 팬이 많다. 팀 선수가 특정 경기에서 활약하면 거의 찬양하다시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애정을 쏟아붓는 반면에 못하면 간판 선수고 뭐고 상관 없이 반역자 취급하며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 한신 팬들의 모토. 그 임팩트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까인다. 그래서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시합이 끝난 뒤 팀 내 인기 선수 중 하나인 니시오카 츠요시가 신명나게 까였고 또 그 전날에는 오승환이 까였다.[20] 그리고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은 소프트뱅크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신하던 시합이었던 만큼 한신 팬들의 분노가 절정으로 치솟아 있던 상태였던지라 후쿠오카 돔 외야 쪽엔 분노로 가득찬 한신 팬들이 집어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수의 한신 응원도구들이 쫙 깔려 있기도 했다. 2020년대 이후로는 코로나19,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응원문화가 바뀌면서 대책없는 선수, 타 팀 비난의 경우 조금은 줄어들었다.[21] 대신에 한신 대상으로 쳤던 설레발의 악명을 알고 있어서 설레발을 타 팀 선수들 대상으로 시전하고는 한다(...).
특히 상황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마무리 투수라는 포지션 같은 경우, 오승환으로 예를 들자면 조금이라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한신 팬들은 트위터나 2ch 실황 중계에서 기다렸다는 듯 "마! 후지카와 데꼬 와라!", "오승화이 치아뿌라!" 등의 욕으로 도배 되었고, 한신-요미우리와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일이 터지면 거의 반년이 넘도록 우려먹어지는데 [22][23] 그 다음 날, 곧바로 퍼펙트 피칭으로 지난 경기를 만회하는 피칭을 하면 하루만에 태세 전환을 하면서 "역시 한신 수호신은 오승환이야!", "승환이 대단해!" 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흔한 일상이었다. 사실 강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식의 선수 취급은 딱히 한신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야구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소위 프로 명문 구단일수록 강성팬들이 많다. 우승 횟수가 많고 그만큼 팬덤 역시 극성스러운 면들이 높아져서 조금만 잘못되어도 물고 늘어지는 건 덤이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언급할 정도로 코로나19 이전까지 잘못된 후원회 문화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24]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 센트럴 리그의 대표. 꼴리건급의 열광적인 팬들을 가진 구단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지역밀착형이라 간사이 지방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구단.[25] 이 반작용으로 성적이 안 좋으면 언론과 모기업 주주총회에서 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까이고 또 까이며, 뭇 간사이인들의 술안주가 된다. 정말 바다 건너 롯데 자이언츠 그 자체. 오죽하면 간사이 지방을 빗대서 한신국(阪神国)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어느 정도냐 하면 팀 성적이 바닥을 긁던 1990년대 말에도 "홈팀 좌석에 빈 자리가 좀 보이더라" 레벨이었고[26] 팀 성적이 좋아진 2000년대에는 원정팀 좌석을 제외하면 무조건 꽉 찼다. 하지만 그 전에 막장 감동님들이 지휘권을 잡던 시절이나 팀 성적이 바닥을 헤메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중후반에는 관중 동원력이 떨어져 그 넓은 고시엔 구장의 절반 가량을 공기로 채우고 경기를 했다고 한다.
한신 타이거스 팬 자격 시험을 돈을 내고 보기도 하며,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서 팔기까지 한다. NPB 구단 중 유일하게 특정 팀만을 위한 게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한신 타이거스 DS'. 개발사는 스파이크. 발매시기인 2008년의 시점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절정은 다름아닌 2001년 2군 웨스턴리그 우승 결정전 당일의 라인업을 나열하라는 문제까지 나오는 특급 난이도. 게임 리뷰어 からすまA는 이 문제를 보고 "이런 걸 누가 맞추냐! 관계자들도 기억 안나는 쪽이 더 많을거 아냐!"라고 리뷰 영상에서 디스했다.
때문에 우승 한 번 했다 치면 간사이가 난리가 난다. 2003년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에는 오버 좀 섞어서 전 도시가 세로 줄무늬(한신 유니폼)로 칠해졌으며, 우승 기념으로 출시된 세로 줄무늬에 한신 엠블럼이 박혀 있는 한신 우승 기념 게임큐브 한정판#[27] 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게임큐브의 제작사인 닌텐도의 본사가 간사이 지방인 교토에 위치하고 있어서 만들어진 한정판. 사실 이 한정판은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올해 한신 우승하면 게임큐브 한정판 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한 실제 제품에 해당된다.[28][29] 그리고 38년이란 세월을 지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7년 기준 평균 관중 수 4만 2천 명대로, 거인을 2위로 따돌리고 일본 1위에 올랐다. 전 세계로 봐도 한신보다 평균 관중이 많은 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뿐이다. 전 세계 평균 관중 2위의 초거대 팬덤을 보유한 야구팀.
심지어 2018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혼조 타스쿠 교토대학 교수[30] 도 노벨상 수상 다음날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신이 강해지기 위해선 감독 교체가 특효약이라고 밝혔고[31] , 2020년에는 요미우리 편파 판정이 워낙 심해 아예 AI 심판을 들여놔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요시노 아키라도 어렸을 적 간사이대학 바로 옆에서 살아 당시 야구부 소속 무라야마 미노루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자란 한신 팬이며 고시엔 백네트에서 야구를 볼 때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감동했다고 밝혔다.
외식업계에서도 인기 있는 구단이다. 선수들 단골집이 타 구단에 비해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빈도가 높은 편이며 한신 팬들이 모이는 이자카야도 많다. 도쿄뿐만 아니라, 칸사이 이외 지방에서도 한신 팬들이 모이는 이자카야는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
7.1. 팬덤[편집]
간사이[32] 와 오사카 일대가 한신 팬이 많아서 어지간한 야구 팬이 아니라면 되도록 한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33] 원래 오사카 자체에서 한신 타이거스가 매우 유명하기에 오죽하면 한신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고, 이자카야, 밥집 등지에선 한신 경기 중계는 항상 나오고 있고 오사카 시에서도 공개적으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을 정도로 인기가 상상 초월인 야구단이다. 괜히 한신 관련 얘기를 꺼냈다가 밤새도록 한신 얘기를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한신 팬이라는 걸 알면 아마 크게 놀라면서 밤새도록 같이 술 마시며 한신 응원가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한신이라 가능한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야구를 보다 보면 야구장에 혼자 오는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지만 혼자 온 관중끼리 스스럼없이 대화를 틀 수 있는 구단은 아무래도 한신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34] 타 구단 팬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보통 초면 및 타인에게 조심스러운 일본인 특성상 같은 구단을 응원한다고 해도 옆사람에게 쉽게 말 걸면서 대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하지만 한신 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신에 대한 팬심을 공유하고자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 일본의 TV 프로에서 여러 사례로 증명되어 왔다. 참고로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한 실험으로, 오사카 지역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신 얘기를 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 있던 생판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 매우 높은 확률로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한신 관중석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해도 분위기가 좋아지면 초면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타 구단에 비해 월등히 높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특히 한신 팬들은 유니폼에 와펜을 붙여서 치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타 팀 팬들에 비해 와펜을 붙인 유니폼이나 핫피를 입은 관객의 수가 월등히 많다. 심지어 바지도 맞춰서 상하의 전부 와펜 등으로 치장한 사람도 많다. 군부대 근처에 자리한 오바로크사들처럼, 고시엔 근처의 가게나 전문 업체에 맡겨 붙이는 경우가 많다.
관동 지역에서도 팬이 많고 관중 동원력이 뛰어나다. 전통의 일전이 적지 도쿄 돔에서 열려도 한신 팬들이 적지 않고 센트럴 리그 안에서는 비인기 구단에 속하는 야쿠르트, 요코하마 전 등에서는 아예 한신 팬들이 더 많은 경기들도 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팬심과 명성에 비해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역대 성적 탓에, 구단 직원들 중에서도 "솔직히 말해서 역사가 긴 팀이고요, 간사이에 있고요, 무엇보다 '안티 거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고 있는 팀이죠."라며 평가하는 사람까지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한테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유계약 신분인 선수들은 "이적하고 나서 성적이 좋으면 영웅 취급해주다가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팬들한테 심한 비판을 받는 것이 무섭다."라고 한다.
심지어 한신이 KBO 리그 출신 용병을 많이 데려오는 이유가 일본 선수들에게 기피 대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흉흉한 말까지 나왔다. 특히 신인 선수들 및 유망주들도 "전통적으로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조금 주며 성에 차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도 안 주는 구단"이라며 기피한다고 한다. 특히 역대급 투수 유망주였던 후지나미 신타로가 혹사 끝에 제구를 잃고 잠재력을 끝내 꽃피우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이며 이런 말이 많아졌다. 다만 이는 확실히 걸러 들어야 할 것이, 그럼에도 한신은 꾸준히 좋은 신인을 배출하고 있으며 대형 FA또한 2~3년 걸러 한 번은 꾸준히 터트리는 팀이다. 한신의 저런 극성인 점을 싫어하는 선수도 많지만, 반대로 인기 팀인 만큼 선수 본인이 한신 팬인 경우도 많은 데다 빅클럽이라 돈도 두둑이 줘서, 싫어하는 선수도 많지만 가고 싶어하는 선수는 더 많은, 오히려 선호도가 높은 구단이다. 일본에도 만연한 찌라시와 찌라시의 기사를 검증 없이 그대로 전하다 보니 생긴 루머.
성적이 좋지 않던 1990년대에는 "민주당과 한신의 공통점이 뭔 줄 아냐? 집권할 능력도 안되면서 집권당(야구에서는 요미우리)의 라이벌을 자처한다는 점"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8. 관중수 추이[편집]
9. 응원[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오사카 타이거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응원곡인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阪神タイガースの歌), 일명 롯코오로시(六甲おろし)가 유명하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당시 제목은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大阪タイガースの歌)였는데, 1962년에 팀 이름이 한신으로 바뀌면서 자연히 제목도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로 바뀌었다.
10. 징크스[편집]
10.1. 프랜차이즈는 해설이나 해![편집]
불구대천의 숙적 요미우리가 감독 선임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대로 구단의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으면 팀이 막장화되는 경향이 있어서[37] 구단에서 활약했던 스타선수들이 은퇴하고 감독을 맡는 것을 팬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009년에 부임한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은 야구의 급격한 예능화로 2011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돼 버리고 말았고 그 뒤를 이은 와다 유타카는 2012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을뿐더러 2014년엔 가을 야구를 너머 일본시리즈 한 번 나가면서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했다지만 재임 기간 내내 예능 야구와 정상 야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 와다 뒤의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그야말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 외야수 출신 감독은 망한다 & 프랜차이즈가 감독 맡으면 팀이 망한다 이 세 속설을 한 번에 증명하고 말았다. 그래도 요미우리랑은 다르게 순수 한신 성골만 감독직에 앉는 것이 아니다. 2010년대 한신 감독 중 아예 타 구단 커리어가 없던 사람은 성골 와다 유타카가 유일했으며 나머지 마유미 아키노부, 가네모토 도모아키, 야노 아키히로는 전부 타 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한신으로 이적한 선수들이었다.
1962년의 양대 리그 이후 첫 센트럴 리그 우승[38] 과 2년 뒤인 1964년 센트럴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출신의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 밑에서 거두었다. 1985년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은 팀 레전드인 요시다 요시오 감독 밑에서 일구어냈지만 불과 2년 만에 최하위로 전락하면서 막장화. 그 후 무라야마 미노루[39] -나카무라 카츠히로[40] -후지타 타이라-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감독을 맡은 요시다 요시오 등등 선수시절에는 팀을 대표하던 스타들이 줄줄이 감독을 맡았지만 돌아온 것은 길고 긴 암흑기.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6년간 6-6-5-6-6-2-4-4-6-6-5-6-6-6-6-4. 중간에 2(1992년)가 하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뭔가가 잘못돼서 1년 반짝한 거다.[41][43] 무엇보다도 최하위인 6만 10번을 찍었다.
그 후 야쿠르트를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세리그의 신흥 강호로 만든 데이터 야구(일명 ID 야구)의 대가이자 난카이 호크스 출신인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기용하면서 3년 간의 리빌딩을 거쳐[44] ,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인
하지만 그 회복세도 거듭되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삽질로 빛이 바래던 중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오카다 아키노부에 이어 또다시 구단 OB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2009년부터 감독을 맡으면서 다시 부진에 빠졌다.[46] 설상가상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지만 결국 마유미 감독에 의해 방출되었던 외국인 투수 라이언 보겔송[47] 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가서 괴물급 활약을 했었다. 그것도 배리 지토를 대신한 5선발로.
이 때문에 같은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감독이 되고 나서 킨테츠와 닛폰햄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명장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을 선임하자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 나왔고 보도 매체에서도 그렇게 전망[48] 했으나 웬걸. 오카다-마유미에 이어 구단 OB인
그리고 2013년엔 그나마 정규 시즌 2위로 올라섰으나, 주니치도 아닌 오랫동안 얼굴을 못 내민 승률 5할도 안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발리고 광탈. 2014년에는 2013년의 수모를 되갚고 숙적 요미우리를 4연승으로 일축하면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여 지긋지긋하던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털어내나 했더니 일본시리즈에서 우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차전 승리 뒤에 내리 4연패로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게다가 니시오카 츠요시의 3피트 라인 룰 위반에 따른 수비방해라는 사상 초유의 막장플레이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면서 모처럼 분전했던 2014년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이어진 2015년에도 1위인 상태로 9월에 돌입했으나 이제 신 가을의 풍물시라고 불릴만큼 고질화된 막판 붕괴로 3위로 추락. 그 와중에 야쿠르트의 14년 만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조력자 노릇이나 하고, 히로시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패하면서 시즌의 운명을 히로시마 손에 맡기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결국 히로시마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진 덕분에 어부지리로 간신히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와다 감독도 2015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이번에는 OB에 외야수이기까지도 한 카네모토 토모아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2016년 코치 경력도 없던 카네모토호는 B 클래스를 기록했으나, 2017년 시즌초 1위까지 올라갔으나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약진과 한신의 DTD 본능(8연패+히로시마전 열세)이 겹치며 잠시 추락, 공동 2위까지 내려갔으나 3~6위 팀들을 잡으며 8월말 단독 2위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가을 야구 경험 부족 및 우천 중단 크리를 맞고 다음해를 기약해야 했다. 시즌 종료 후 주전 유격수였던 야마토가 요코하마로 이적하고, 장타력 보강을 위해[51] 한화 이글스에서 윌린 로사리오를 영입했다. 그러나 로사리오는 한국 프로야구의 개막장 타고투저의 수혜자였음이 드러났고 2017시즌 막판에 싹수가 보이기 시작하던 유망주들은 죄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폭망해서 2001년 노무라 카츠야 시절 이후 17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노무라 시절하고 비교하면 안 되는 게 그때는 10년 동안 비밀번호를 찍어서 황폐화된 팀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네모토는 우승을 목표로 선임한 감독이다. 이미 노무라의 후임인 호시노 시절 이후로는 우승이 목표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그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족하게 지원을 해 준 가운데 기록한 최하위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이 팀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을 하면 팀이 망한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그리고 2018년 시즌 종료 후 포수였던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은 니시 유키를 사왔다. 다행히 시즌 마지막에 연승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막차를 탔으나, 요코하마를 이기고도 요미우리에게 패했다. 2020 시즌에는 2위를 차지했으나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인해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취소되면서 요미우리에 대한 하극상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고, 2021년에도 마지막까지 1위 싸움을 했으나, 끝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3위 요미우리에 시리즈 스코어 2-0으로 박살났다. 그리고 2022 시즌 시작도 되기 전에 시즌 종료후 사퇴를 공언하더니 개막부터 15 경기에서 1승 1무 14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하며 레임덕을 스스로 가속화시켰다. 그래도 교류전에서 6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해 최하위 탈출 후 나름대로 3~4위권에서 버텨내는 중이다. 그 후로 7월과 8월에 극과극의 성적을 내달렸지만 마지막 4경기에서 3승1무를 거두어 시즌초반 3승 1무 19패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A클래스에 진입하였다! 이로써 야노 감독은 재임기간 내내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23년, 한신이 프랜차이즈 출신이자 33-4의 장본인이었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을 다시 선임하였는데 기어코 18년 만의 세리그 우승과 38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만들어내면서 이 징크스를 멋지게 깨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신 타이거스 역사상 유일하게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인물이 되었다.
10.2. 국제대회와의 악연[편집]
여담으로 올림픽, WBC 등 국제대회에 선수가 차출되어 나가면 꼭 한둘씩 망가져서 돌아오는 안 좋은 징크스가 있다.
11. 안티 교진 선봉장[편집]
일본 프로야구 최대 인기 구단이라 할 수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항하는 전선의 선봉은 단연 요미우리에 맞먹는 팬덤을 보유한 한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요미우리 팬과 연애라던가 결혼도 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이 둘의 라이벌리는 전통의 일전이라 불린다. 2016년 기준 평균 관중은 요미우리가 42,172명으로 일본프로야구 1위, 한신 타이거스가 41,276명으로 일본프로야구 2위를 기록했으며, 양쪽 성적에 따라 순위가 오갈 정도로 치열하다. 각종 매체에서도 한신은 요미우리의 라이벌로 묘사된다.
관동 지역 한신 팬의 열성은 더 유난 맞아서, 도쿄 돔뿐만 아니라 관동 쪽에서 벌어지는 원정 경기에는 상대가 야쿠르트든 세이부든 상관 없이 응원단이 일단 "죽어버려 요미우리 아자아자" (くたばれ読売 そ-れいけいけ)[52] 부터 부르고 시작할 정도.[53]
한편 한신과 요미우리가 맞붙는 날에는 도쿄돔 스피커에서 나오는 요미우리 응원가인 '투혼을 담아(闘魂こめて)'의 하이라이트 부분 가사인 "가자 가자 나아가자(行け 行け それ行け)"는 한신 팬들이 쌩목으로 외치는 "죽어 죽어 죽어버려(死ね 死ね くたばれ)"에 묻혀버릴 때가 많은데, 민영 방송이라면 광고로 돌리는 걸 쓸 수 있지만 NHK의 경우는 법으로 광고편성을 못하게 되어 있어서[54] 잠시 뉴스로 돌릴 때를 빼면 광고로 생중계를 끊을 수 없어서 저게 생중계되는 방송사고가 터져버리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55] 그것도 교진군 홈구장 도쿄돔 한복판에서. 도쿄돔이 저 정도면 고시엔은 더하다. 고시엔에서 벌어진 한신 팬과 요미우리 팬의 싸움[56] 거기다 극성맞은 팬들은 요미우리 응원단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갈기면서 저걸 외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롯데 따라쟁이(ロッテのパクリ)'는 보너스. 당연히 구단 이미지에 마이너스 요인인지라 구단에서 CM까지 만들면서 좀 하지 말라고 하고 있지만 부를 사람은 부른다.
그리고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투수인 무라야마 미노루[57] 는 요미우리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58][59] 으로 인해 계약금을 4배나 더 주겠다는 요미우리의 러브콜을 걷어차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을 만큼 선수부터 팬까지 요미우리에 대해서는 아주 살벌한 팀이다.
한신과 요미우리의 대립 구도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프로야구 최초의 구단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신인 '거인군'이고, 다음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전신인 오사카 타이거스가 생겼다. 또한, 일본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36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프로야구가 중단되기 전인 1944년까지 우승을 기록한 팀은 요미우리와 한신, 둘뿐이었다. 한신은 요미우리의 우승을 3회(1937, 1938, 1944년) 저지했다. 양대 리그제가 시행된 1950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도 우승 구단은 요미우리, 한신, 킨키 그레이트링[60] 등 셋뿐이다. 지역 배경으로는 관서의 한신과 관동의 요미우리라는 대립 구도가 성립한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호남의 해태 타이거즈 VS 영남의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라 할 수 있다.
12. 미디어[편집]
두말할 것 없이 간사이 미디어계를 먹여 살리는 화수분이자 영원한 신문 1면 주제. 간사이권에서 한신 타이거스의 대중 인기가 높은 만큼 시즌 중, 오프시즌을 막론하고 미디어에서의 주목도와 화제성 모두 압도적이어서 간사이권 준키국 지상파 야구중계 중 대부분이 한신 중계다. TV 방송 와이드쇼에서는 연예, 시사가 중심이 되는 다른 지방[61] 과 달리 한신 타이거스의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 실황이 아침부터 생중계되기도 하며[62] , 한신 출신 해설자와 현역 지도자, 선수가 와이드쇼와 뉴스에 나와 경기 해설 및 비평을 한다. 웬만한 정보 및 뉴스 프로그램에선 한신 담당 코너가 따로 있으며, 심지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관련기업인 요미우리 TV가 앞장서서 최초의 한신 응원 프로그램 '주간 토라토라 타이거스'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스포츠 신문의 경우에도 간사이권의 1면은 한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고베신문사의 자회사인 데일리스포츠[67] 는 꺾이지 않는 데일리[68] 라고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데, 웬만하면 한신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뤄 주고 전직 편집장이 "지구가 거꾸로 돌아도 1면은 한신"'#이라는 코멘트를 할 만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경기 결과, 이치로의 3천안타, 일본시리즈 우승 소식, 심지어는 정권교체[69] 도 가뿐히 제끼고 웬만하면 한신 소식이 1면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신팬들의 니즈에 맞춰주기 위해서 미디어에선 2005년의 우승 설레발이나 2008년의 'Vやねん!'라든지, 2021년 'アカン! 阪神優勝してまう!'와 같은 설레발들이 잦고, 이로 인해 구단이 개망신을 당한 사례가 하도 많다 보니, 2023년 칸사이권 미디어들은 죄다 한신의 우승을 그거(アレ)라고 표현하며[72] 보도통제에 비슷한 자세를 보여주는 등 설레발을 최대한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승을 경험한 2024년에도 여전히 구단은 A.R.E. Goes on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면서 표현을 최대한 억제하는 중.
물론 이같은 칸사이권 미디어의 한신 주목도는 항상 좋은 쪽으로만 언급되는 건 아니라, 2023년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종료 후 기자 회견에서 한신 질문만 하는 기자들에게 나카지마 사토시 오릭스 감독이 간접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한신 팬들마저 엄연히 오릭스 기자 회견인데 한신 이야기만 하는 기자들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13. 이야깃거리[편집]
- NPB 역사상 최단 시간 시합과 최장 시간 시합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 최단 시간은 1946년 7월 26일의 55분(쇼치쿠 로빈스전).
- 최장 시간은 1992년 9월 11일의 6시간 26분(야쿠르트 스왈로스전). 참고로 한국프로야구 기록은 최단 시간 1시간 33분, 최장 시간 5시간 58분.
- 1952년 연고지 제도 확립 후 12구단 중 홈구장을 옮긴 적이 없는 유이한 팀이며[73] , 양대 리그제 시행 이전 현재까지 남아 있는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지 않다. 교세라 돔 오사카는 코시엔 때 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팀의 홈은 고시엔이다.
- 예전에 비해 FA 영입 등에 돈을 많이 풀고 있는데 용병, 일본 내 FA 중 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대어를 낚아대는 바람에 히로시마 구단 팬들과 미묘하게 사이가 안 좋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4번 타자이자 재일교포인 카네모토 토모아키라든가 아라이 타카히로라든가, 앤디 시츠 등 이상하게 히로시마 제들을 데려오면 대박 성공. 때문에 농담으로 히로시마는 한신의 팜(2군)이냐 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 어쨌든 이런 투자 확대 등으로 현재는 과거의 강호의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승까지 달성했다.
- 그 예로 2003 시즌과 2005 시즌에 세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지만 2003 시즌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3승 4패, 2005 시즌에는 당시 이승엽이 소속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4전 전패의 치욕을 당하고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게다가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는 4게임 동안 총 득점 4 대 33으로 처절하게 발렸다.[74] 이후 호시노가 건강 문제로 사임한 뒤 오랫동안 2군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구단 출신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오카다가 감독을 맡은 2005년에 다시 리그 우승을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노무라-호시노가 남겨준 유산 덕분. 다만 센트럴 리그는 우승했지만 그해 일본시리즈는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2006년, 2007년에도 우승 전선에는 뛰어들었지만 뒷심 부족으로 주니치, 요미우리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 노란색, 검은색, 회색을 팀 컬러로 쓰고 있고 이중 노란색을 메인 팀 컬러로 쓰고 있지만, 정작 양대 리그 창설 이후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한 해에는 유니폼에 노란색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단 스타킹과 왼쪽 소매의 구단기에도 들어가 있는 호랑이 마크 제외. 이마저도 호랑이 마크는 2001년에 잠시 회색으로 바꾼 적이 있었다.
- 포켓몬스터의 야빠 캐릭터 나진이 좋아하는 에레브스는 바로 이 한신 타이거스를 모델로 한 야구팀이다. 이미지 컬러가 노랑이고 세로 줄무늬[75] 가 특징이며, 성적이 저조한 점이 유사하다. 사족으로 한신의 23년 만의 우승이 이루어진 시기가 지우 체제의 시즌이 끝나고 8개월이 지난 뒤여서 지우 체제의 시즌이 계속되었다면 나진도 에레브스의 우승을 축하하는 모습으로 재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팬들의 의견도 간혹 있다.
- 일본의 만신이라 불렸던 데즈카 오사무도 오사카 시절부터 한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1950년의 연하장에는 "타이거스 성적이 개판이라 만화 그릴 생각이 안 든다!"[76] 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연하장에 꼬박꼬박 한신 유니폼을 입은 호랑이를 그려서 보낸 건 기본. 저렇게 푸념한 1950년이 마침 호랑이 해인 경인년이기도 해서 연하장에다 데즈카 선생이 그린 호랑이 마스코트가 바로 위의 그림이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시리즈 우승은 했으니까 여한은 없었을 듯싶다.[77]
- 유명 성우이자 가수 미즈키 나나도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78] 덕분에 한신 타이거스의 골수 팬. 특히나 야노 아키히로 선수의 팬이라고 하며 콘서트에서 직접 사인을 전달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 에피소드도 있다. 여러모로 애착이 강한지 '다 함께 롯코오로시' PV[79] 도 찍고 시구도 하고 절찬리에 한신빠 인증을 진행 중이다.
- 일본 방송계에서도 굴지의 한신 빠로 알려져 있는 치아키라는 여성 탤런트는 아예 "어렸을 적엔 요미우리 선수들을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집안 자체가 골수 한신 팬 집안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80] 요미우리에 대한 편견을 지운 건 성인이 되어 방송계에 입문한 후 은퇴한 요미우리 출신 선수들과 관계를 갖게 된 뒤부터라고 할 정도. 물론 지금도 2017 롯코오로시 영상에도 출연했으니 한신 팬인 건 어디 가지 않는다.
- 메이저리그 진출 실적은 라이언 보글송을 제외하고는 영 좋지 않은 편이다. 이가와 케이는 양키스에 악몽을 남기고 돌아왔고,[81] 후지카와 큐지는 가서 별 활약없이 망해서 돌아왔다.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가 세실 필더와 오승환 정도. 그러나 둘 다 외국인 선수인데다 세실 필더는 원래 메이저 리그에서 뛰던 선수였고, 오승환은 도박 사건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케이스라... 후지나미 신타로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괴멸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팀 투수진이 마찬가지로 개판 5분 전이라 의외로 평가는 나쁘지 않다.
-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되어 있는 작품 중엔 호텔 퀸시라는 제목으로 정발된 컨시어지라는 만화에 골수 한신 팬이 등장한다. 퀸시호텔 사장인 마츠오카 슌이치로와 그 일족들인데, 아예 이 캐릭터가 개그하는 장면의 90%는 한신 관련일 정도다. 작중에서도 4컷 만화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본편에도 한신 관련 소재는 심심하면 등장하는 수준. 예를 들면 업무 중 실수를 해서 보고를 하다가 혼날 걸 걱정하는 다른 사원에게, 각각 한신이 대승했을 때와 대패했을 때를 골라서 보고를 하라고 조언해 준다. 결과는 대승으로 기뻐해서 그런 사소한 일은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과 충격적 대패로 인한 허탈감에 그딴 사소한 일에 열 낼 기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 '중요한 업무 관련 이야기는 10분 정도 나누고 한신의 가상 라인업 짜기로 2시간 통화하기' 같은 소재도 있다.
-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제작사인 파워프로 프로덕션도 한신과 밀접한 관서 지방에 있어서인지 제작진 대부분이 한신빠이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대대로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들은 실제의 활약상보다 능력이 좋게 나오는 편. 그러다 보니 페넌트레이스 모드에서도 거의 만년 상위권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그나마 최근 들어 한신 편애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고,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3에서는 한신 타자들의 능력치 책정에 자비가 없었다.
- 오토타케 히로타다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팀이다.
- 작고한 성우 타테카베 카즈야도 생전에 열혈 한신 팬이었다고 전해진다.
- 성우 와타나베 유이가 한신의 열성 팬이다. 스스로 취미가 한신 타이거스의 타순을 맞히는 것이라고 할 정도인데, 간혹 한신 경기 중계에 잡히기도 한다.
- 아즈망가 대왕의 등장인물 타키노 토모가 한신의 열성 팬이다. 그런데 미하마 치요가 요미우리의 팬인지라 이걸 가지고 대차게 놀린다. 한국 더빙판에서는 한신과 요미우리가 각각 롯데, LG로 로컬라이징되었다. 여담으로 일본의 한신 타이거즈나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나 어차피 둘 다 못하는 팀 취급받는 건 똑같다. 그러나 2023년, 한신은 38년 만에, LG는 29년 만에 각각 일본시리즈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 전술된 것처럼 '우승 못 하는 팀'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부탁해 마이멜로디 1기 2화에서 찰지게 디스를 당한 적이 있다. 마이멜로디가 '쿠로미의 악행을 막지 못하면 사람들은 꿈을 가질 수 없게 된다'며 도와달라고 하자 우타네 식구와 친구들이 자신의 꿈은 어떻게 되는거냐며 찡찡대는데, 그 와중에 후지사키 마나가 "타이거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은?"이라고 묻자 마이멜로디가 단칼에 "그건 무리"라고 답했다.#직접 보자 공교롭게도 이 에피소드가 방영된 2005년은 다름아닌 33-4의 대참사가 벌어진 해라 마이멜로디의 저 발언이 선견지명으로 주목받는 웃픈 일이 있었다. 그 후로도 실제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신 타이거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은 오리무중인 상태였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와자키 스구루, 우메노 류타로, 아오야기 코요가 금메달을 따 오면서 올림픽 금메달보다도 한신 우승이 더 힘들게 되었다가 결국 2023년 일본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8년 만의 우승에 성공하며 마이멜로디의 저주를 풀었다.
- 2013년에 36년 만에 치어리더를 부활시켰으나, 일본 웹상에서는 왜인지 치어리더가 12개 구단 중 가장 못생긴 팀으로 유명하다(...). 한신 팬들 사이에서도 치어리더가 필요없다는 의견이 많으며, 2023년에는 치어리더가 금전 문제로 해고당했다.
- 2023년 9월 14일, 한신 타이거스는 18년 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4-3으로 꺾고 센트럴 리그 정상에 올랐다. # 이와 같은 상황에 외교부[82] 에서는 인파가 폭발하여 인파 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오사카 도톤보리에 방문하는 것을 되도록 피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오사카부 경찰이 도톤보리 근처에 1300명 가량 투입되었다.
13.1. 한국선수 영입 낚시[편집]
유독 한국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관심 의사를 언론에 많이 흘리지만 실제로 영입하지는 않아서 관심 구단으로 악명이 높았다. 실제로 영입한 사람은 오승환 한 명.
- 이종범: 소문뿐이었다. 1999년 시즌 종료 후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외인 타자를 추가로 영입했고, 팀도 내야수 용병을 영입할 필요성이 있어 내야와 외야가 모두 가능한 이종범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내용을 주니치 계열사의 스포츠 신문인 주니치스포츠가 보도했으나,# 결국 주니치에 잔류. 이후 2001년 웨이버 공시가 될 때에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 함께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결국 기아 타이거즈로 복귀하였다. #
- 이승엽: 일본 진출 시 영입 의사를 표시했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계약이 끝날 때 쯤 또 한번 미끼를 던졌으나 결국 영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이승엽에게 호되게 얻어맞으며 스윕을 당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로서 센트럴 리그에 합류한 이승엽의 충실한 샌드백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이승엽의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이승엽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뽑아낸 상대 팀이 한신 타이거스.
- 김동주: 2008년, 첫 FA를 맞이한 김동주를 영입하고 싶다는 보도를 흘렸으나 결국 김동주는 두산과 계약했다.
- 이택근: 일본 언론에서 베이징 올림픽 이후 한신이 이택근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나중에 사실무근이라는 정정보도를 냈다.
- 김태균: 소문뿐이었다. 결국 치바 롯데 마린스로 갔다.
- 이범호: 소문뿐이었다. 결국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로 갔다.
- 임창용: 소문뿐이었다.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갔다. 이후 야쿠르트와의 계약이 끝날 때 한신이 엄청난 거액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퍼졌으나 임창용 본인이 미국 무대 도전을 원하여 시카고 컵스로 떠났다.
- 이대호: 소문뿐이었다. 결국 오릭스 버팔로스로 갔다. 그리고 2013년 이대호가 일본야구에 적응하고 펄펄 날아오르자 한신이 2013년 이후 오릭스에서 FA가 되는 이대호를 관심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결국 2013년 12월 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이후 메이저에 진출했다가 시애틀과의 계약 만료 후 미국에서 주전이 아니라면 아시아로 돌아온다는 설이 나왔다. 일본에선 소프트뱅크나 지바롯데, 라쿠텐, 한신 등이 언급되었고 특히 한신은 연봉 5~6억 엔처럼 구체적인 액수까지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대호가 요구한 풀 타임 1루수 출전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렬되었다.
- 김광현: 2009년자 보도로 2015년 김광현의 FA를 대비하여 한신이 무려 6년 동안의 장기 영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초특급 설레발 기사가 나왔다.
- 배영수: 2010년에 FA가 되는 배영수에게 관심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배영수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선택하였지만 간 수치가 높아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입단이 취소되고 삼성과 2년 계약을 하였다.
- 오승환: 2013년에 FA가 되는 오승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소식에, 일본 언론쪽에서 한신이 시즌 후 구단 동의 해외 FA가 가능한 오승환에 대해 영입 조사를 착수했다는 기사가 떴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신빙성이 뒷받침되는 이유는 2012 시즌부로 한신을 떠난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 큐지와 오승환의 스타일이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83] 오승환의 경우는 위의 경우와 또 다른 것이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오승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오승환을 보기 위해 단장인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직접 내한했고, 이제는 오승환 영입을 위해 7억엔이라는 실질적인 금액과 대우까지 제시한 상태이다. 결국 2013년 11월 22일, 2년 최대 9억 엔 조건으로 계약에 성공.#
- 손승락: 오승환이 팀에서 떠날 때를 대비해서 오승환의 대체 선수로 손승락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닛칸스포츠의 기사가 나왔다.#
- 양현종: 손승락과 비슷한 맥락으로 오승환이 한신을 떠날 걸 염두에 두고 앞서 거론 된 김광현과 더불어 양현종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며 일본 언론은 언플질을 했다.#
- 김현수, 최형우: 2015년 들어서 김현수와 최형우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떡밥을 흘렸다.#
이러다 보니 국내 야구 팬들에게는 양치기 소년 이미지가 굳어졌으나 오승환의 영입으로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받는 팀이 되었긴 한데, 이대호와는 달리 케이블 방송국에서도 중계권 구매를 안 해서 일본에서는 아침 방송에도 하이라이트가 나오는[84] 오승환의 활약을 한국에서는 아프리카TV로만 볼 수 있었다.[85] 오죽하면 오승환 본인도 라디오 스타에서 일본프로야구에 관심 좀 가져달라고 한탄하기도...[86]
한국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사례가 윌린 로사리오와 제리 샌즈. 샌즈의 경우에는 2019년 키움 히어로즈의 시즌 종료 이전이었던 8월부터 한신 당기관지인 데일리스포츠 등을 통해 야노 아키히로 감독의 코멘트까지 첨부한 영입검토 기사가 나와서 키움 팬들이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87] 결국 샌즈를 데려갔고,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여줬다.
이렇게 영입한다는 말만 많은 이유는 재일교포가 많은 간사이권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데, 또 돈도 많은 구단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모기업은 작지만 구단이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그만큼 팀에 투자도 많이 하는 것. 전통적으로 오사카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에 살아온 재일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한국계 팬도 무시할 수는 없는 숫자를 이루고 있고, 구단에도 많은 재일교포 출신 스타들이 있어 한국리그 출신 선수들을 자주 재보는 것. 실제로 오승환이 활약하던 시절 오사카에서 인기가 상당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빅클럽이다 보니 한국 선수들을 이리저리 재보다가도 결국 싸지만 도박인 한국 리그 출신 선수보다는 비싸더라도 검증된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 혹은 일본 내 타 팀 출신 선수로 마지막에 가서 발길을 돌리게 되고 마는 것. 돈은 충분히 있는데 굳이 도박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외에 이승엽이나 이대호 같은 정말 검증된 선수의 영입 경쟁에서는 한신보다 더 돈이 많은 교진이나 호크스 같은 구단에 돈 싸움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고.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양치기 소년 이미지를 갖게 된 구단이다.
2020년은 코로나로 마이너리그가 중지됨에 따라 선수를 검증할 곳이 없고 한국 리그 출신인 샌즈의 어느 정도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어 2020년 오프시즌에는 한국 리그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멜 로하스 주니어와 라울 알칸타라를 영입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외국인의 입국이 전면 금지되어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다.[88] 그 이후 두 선수 모두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자체 육성한 유망주들만으로도 시즌을 우승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갖추어지자 점점 한국 출신 용병에 대한 관심도는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13.2. 커널 샌더스의 저주[편집]
자세한 내용은 커널 샌더스의 저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사건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선수단[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등번호[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등번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7. 역대 선수[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신 타이거스/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